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사 43:15]
창조의 신비
성경과 기독교
노아의 홍수
생명복제와 UFO
천문학
물리학 수학 환경
지질학
화석
진화론
진화론의 주장
창조론
연대문제
압도적인 노아 홍수
의 지질학적 증거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부정되고 있는 수십
억년의 지구연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만물에 깃든 창조주
의 능력과 신성
진화를 부정하는
살아있는 화석들
진화론의 허구적
증거와 주장
첫 방문자를 위한
창조과학 추천자료
ICR
AiG
Impact Article
CMI
Creation Magazine
Encyclopedia
Technical Journal
CEH
Headlines
CRSQ
Omniology
CSC
Bible.ca
RAE
 
창조론과 신앙 HOME > 자료실 > 창조론과 신앙
한국에서의 창조론 운동의 회고와 전망
김영길, 조덕영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신다 (롬 10:13~15). 모세가 그러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요나,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가 그러했다. 한국 창조론 운동도 하나님은 창조과학회라는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러내어 역사하셨다.


1. 한국창조과학회의 태동

1980년 '8O세계복음화 대성회' 기간 중 '창조냐 진화냐'에 대한 4일간의 세미나(8.12~8.15)가 한국대학생 선교회(CCC)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는 예상을 뒤엎고 학생, 일반, 교역자, 과학자 등 연 4천여 명이 참석하는 경이적인 모임이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기원 문제'에 대해 관심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일한 국내 강사였던 김영길 박사(KAIST교수, 본회 회장)를 중심으로 통역했던 과학자 등 25명의 크리스찬 과학자는 간담회를 갖고 창조과학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3O여 차례의 모임과 기도로 준비하고 81년 1월 29일 두란노 서원) 에서 창립을 앞두고 철야 기도회를 가졌는데, 조병호 목사(새서울 순복음교회)가 출애굽기 3:6을 본문으로 '창조'라는 말씀을 전하였다. 이날 김영길, 최영상, 송만석, 김해리, 민성기 박사와 초대 간사가 된 심영기 박사 등이 참석하였다.

드디어 1981년 1월 31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창조과학회가 정식 창립되었다.

김준평 (중앙대 농화학) 장로의 대표기도, 철야기도를 인도한 조병호 목사의 사도행전 17:24~27 본문으로 한 메세지에 이어 진행된 2부 창립총회에서 김영길 박사를 초대회장으로 선임하였다.

81년 2월 11일 자로 확정된 초대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 김영길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

부회장 - 최영상 (고려대, 회학)

감사 - 유완영 (한국통신기술연구소)

간사 : 기획간사 - 오형재 (서울산업대, 수학)

행정간사 - 심영기 (고려대, 회학)

학술간사 - 노정구 (KAIST, 생물공학)

홍보간사 - 남수우 (KAIST, 재료공학)

신앙간사 - 유병우 (KAIST, 통계학)

재정간사 - 민성기 (홍릉기계)

출판간사 - 정명균 (KAIST, 기계공학)

교육간사 - 채명준 (한양대,화학)

분과위원 :

생명과학분과위원장 - 이은호 (KAST, 생물), 김해리 (서울대, 생화학) : 생물, 생회학, 의학, 약학, 동식물학, 간호학, 보건학 등

지구과학분과위원장 - 박동원 (서울대, 지형학), 김정욱(KAIST, 환경공학부) : 지질, 지리, 천문, 기상, 광물, 해양학 등

이공학분과위원장 - 김정한(KAIST, 화학), 장근식(KAIST, 항공학) : 물리, 화학, 수학, 기계, 토목, 재료, 금속, 전기, 전자, 산업공학 등

대전지부장 - 문한규(한국표준연구소 재료시험실장)

고문 - 김준평 (중앙대, 농화학), Goette (숭전대, 화학), Torrey (예수원, 신부),

김준곤 (CCC 목사), 전산초(연세대, 간호), 이병호(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장영길 (장영길 소아과의원, 의학)

학회 사무실은 강력한 창립 후원자 CCC 김준곤 목사의 배려로 무료로 정동 사무실 일부에 마련하게 되었다. 초기 임원 선임의 특징은 부회장을 위원장, 학술간사 및 분과위원장을 위원으로 하는 '교과서 수정 추진 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창립부터 교과서 수정을 위한 의욕을 보였던 것이다.

창립전후로 매스컴들은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의 조직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보도하여, 교계 신문 뿐 아니라, 일간지들과 방송들이 창립 총회를 전후하여 여러 가지를 보도하였다. ('진화론에 반기를 든 과학자들' 조선일보 1981.1.28., '창립총회 안내' 한국일보 1981.1. 27, 중앙일보, KBS, FEB, CBS 등).

정회원 54명, 준회원 4O명으로 출발한 창조과학회는 10주년이 지나면서 약 1천 여명의 회원으로 성장했고, 1990년 교육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창조과학회의 출범은 과학과 신앙을 양립할 수 없어 고민하던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더욱이 신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학문이 과학적 타당성이나 증거도 없이 오랫동안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일 것' 이라는 막연한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던 상태에서 크리스찬 과학자들이 던진 '과학을 통한 창조론 전파'는 교계와 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 문서 선교 사역

초기 창조론 운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문서 선교였다. 그 중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는 그 대표적인 서적이다. 이 책은 창조과학을 소개할 서적의 필요를 느낀 임원들의 제안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자체 연구자료가 없어 미국 창조과학회의 자료들을 번역, 정리하기로 하고, 양승훈(당시한국과학기술원 박사 2년차, 행정간사)가 책 절반을 차지하는 화석학적 고찰을, 그외 김영길, 최영상, 남수우, 노정구, 박동원, 김해리 교수가 나누어 번역하였다. 일차 완성된 원고는 번역에 참여한 임원들이 검토하여 수정 보완하였고, 완성된 원고는 을지로 인쇄소 골목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양승훈 간사와 출판업자 두 사람이 마무리 작업하여 만들어 - 비록 오자와 탈자가 많았지만 창조과학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여, 출간 두달이 못되어 재판을 찍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바로 창조과학 문서 선교의 시발이었다.

문서 선교는 1989년 창조과학회 출판부(대표 김종배 박사) 인가로 이어져서 현재까지 4O여 종의 단행본과 전도소책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간증집 '열리는 영의 세계', '신비한 인체의 창조섭리',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공룡도 하나님이 만드셨을까?', '놀라운 창조 이야기(번역서)', '신비한 식물 창조섭리',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 등은 모두 베스트 셀러에 들었고, 꾸준히 독자들에게 환영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0년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한 자연과학(김영길 외 26인 공저)은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신학교 뿐만 아니라, 명지대, 우석대, 고신대, 경희대 등에서 대학 교양과정 교재로 채택되었다. 이 책은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교과서 검정'이라는 교육부 제도에 묶여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오히려 대학의 교과서가 먼저 수정되는 아이러니를 가져온 것이다. 1994년 발간된 역서 '진화론과 과학'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진화론 비판 서적중 가장 깊이 있는 책으로, 신앙인들 뿐 아니라 진화론자들에게도 참고 교재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문서 선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 이전에 창조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데 기여하였고, 지금도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3. 창조과학 연수회의 개최

창조과학 연수회는 창립 1주년 기념으로 82년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연인원 400여명이 참석한 이 연수회를 시발로 해마다 창조과학 연수회를 개최하여 한국 교계가 창조과학 운동을 이해하는 장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창조과학 강사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1991년 8월 2O일부터 23일까지 온누리 교회에서 그 대상을 일반인까지 확대하여 학회 창립 10주년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이때 국내 강사로 조정일 교수, 이웅상 목사, 미국에서 듀안 기쉬, 리처드 블리스, 스티븐 오스틴, 존 모리스 등 미국 창조연구소(ICR)의 핵심 요원들과 호주 창조과학회(CSF) 소장 앤드류 스넬링, 일본 창조과학 연구회의 우사미 마사미 박사 등이 해외강사로 참여하였다. 이 국제심포지엄에는 연인원 4,000 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가 되어, 주요 일간지들은 기쉬 박사 등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MBC TV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방영하였다. 교계 일간지 국민일보는 연일 관계 기사를 실어 중요성을 알렸고, 무료 5단 전단 광고를 수시로 실어 후원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주요 강의내용을 발췌 수록하여 대중들에게 창조과학을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명지대에서는 종합대학교로서 처음으로 창조론 강좌를 개설하였고(91.8.31. 국민일보), 95년까지 전주 우석대, 덕성여대, 안양대, 대전 배재대, 천안 호서대, 한동대 등 여러 종합대학교에서 창조론 강좌를 개설하게 되어 기원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시도되게 되었다.

 

4. 전임 간사들

학회 행정을 담당한 첫 간사는 태동때 궂은 일을 맡았던 심영기 박사(당시 고려대 대학원)였다. 심영기 간사가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자, 이웅상 목사(당시 서울사대 생물학 대학원)가 헌신하였다. 그리고 양승훈 교수(당시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대학원)도 간사로 수고하였다.

1983년 여름 이웅상 간사가 미국에 유학가고, 양승훈 간사가 박사학위를 받고 경북대학교 사범대 물리학과로 가자, 조정일 교수(당시 서울대 사대 생물교육과 졸업)가 후임을 맡았다. 조정일 간사도 얼마후 국비로 유학길에 올랐다.

초창기에 전임간사로 헌신했던 이들 이 학위를 마치고 현재 창조론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로 활약하고 있다. 1984년에 조덕영 간사(현재 본회 대표간사 겸 출판부 편집담당)가 조정일 간사 후임으로 헌신하였다. 전임 간사 시대는 행정의 기반을 닦고 정규적인 연수회와 정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소식지 '창조'의 정기적 발간과 창조과학 도서 및 시청각 기재의 지속적 발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명현 박사가 헌신하여 봉사하다가, 1995년 신설된 한동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창조과학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5. 학회 소식지 '창조' 발간

81년부터 84년 중반까지 3년 반 동안 46배판으로 통권 14호까지 호당 400-600부씩 발행되던 학회지 '창조'는 전임간사의 헌신으로 1984년 후반기부터 매월 4,000부씩 발행되기 시작했다.

전국의 기독 관련 단체들과 교회들에 '창조'지를 보냄으로써 한국 교계에 창조론 운동의 참뜻이 널리 알려져, 통일교 단체로 오인되었던 것이 불식되고 교계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무가지로 매월 발행하는 것이 재정적인 부담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필요한 재정이 채워졌고, 한 때 구독료를 내고서라도 받아보겠다는 구독회원들만 정규 회원보다 많은 1,000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몇 번의 판형 개정을 거쳐 1996년 9월 99호가 발행되었고, 현재는 격월로 발행되고 있다.

 

6. 창조과학 초청 세미나를 통한 사역

전임간사의 헌신, 소식지 발간과 함께 달라진 것은 창조과학 초청 세미나의 급증이었다.소식지에 따르면 창립부터 1984년까지 4년간 총 282회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1985년 한해동안 수도권 지역에서만 214회, 86년에는 322회에 달하여 거의 매일 창조과학집회가 열린 셈이었다. 이것은 사무실을 통해 집회가 확인되어 창조지에 수록된 집회만의 통계이므로 실제로 전국적인 창조과학 세미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시작은 아주 미약하였으나' 한국창조과학회는 창조과학자들의 열정적인 헌신에 한국교회의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놀라운 호응을 보인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수천 회에 이르는 창조론 강연을 통해 한국의 주요 교회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 창조론 집회를 개최하였고, 대학의 기독단체나 직장 신우회 등에서도 창조론 강연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대학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창조과학 집회를 해마다 열고 있으며 단국대에서는 미생물학과 주관으로 창조와 진화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였다.

창조과학 세미나의 강사는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 회장 김영길 박사를 비롯, 김정한, 송만석, 김해리, 김정욱, 이웅상, 양승훈 박사 등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강연을 하였다. '제1세대' 창조론 강사는 미국 M.I.T에서 핵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 핵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노희천 교수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교수로 부임한 김종배 교수,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교수로 부임한 신현길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김영인 박사 등이 가세함으로 더욱 보강되었다. 특히 1984년 2월 강남지역 교역자 연합회가 주최로 영등포의 한 예식장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강연된 노희천 교수의 '노아의 홍수'는 한국창조과학회에서 가장 많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창조과학 운동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종배 교수의 '생명의 존엄성', 김정욱 박사의 '환경과 창조' 등도 많은 호응을 얻어 창조과학 사역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조덕영 간사의 '공룡'강연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창조과학 사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다.

창조과학 세미나의 핵심 강의는 4편의 창조과학 슬라이드로 제작되어 전국의 창조과학 강사들에게 창조과학 강의의 기본 내용으로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창조과학 영화 상영도 활기를 띠어 창조과학 집회나 여러 전도집회에서 활용되었다. 1990견 9월 현재 전국적으로 창조과학 강사로 봉사하는 핵심적인 회원만도 66명의 총회 대의원을 포함하여 100여명에 이르고 있으니 그 파급 효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회원 모두가 성실한 창조과학 전도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본 회는 전국에서 가장 집회를 많이 감당하고 있는 초교파적 기독교 단체로 기록될 것이다.

본회의 사역을 통해 변화된 삶을 간증하는 편지들이 전국에서 답지하고 또 자발적으로 사역에 동참하는 회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허성욱 전 부산지부장, 허종화 교수(현 경남 지부장), 한윤봉 교수(전북대), 백우현 박사, 김정훈 박사(미 체류중), 조승운 안성의료원 과장, 김록권 원장(국군 병원), 이광원 서울 과학고 교사, 이흥배 서울 오륜중 교사, 최희원 정의여고 교사, 이상덕 집사, 유은상 회원, 백영종 회원, 김대희 회원, 윤석찬 형제 등은 학위여부를 떠나 열심이 유별난 회원들이기에 여기 기명한다. 이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창조에 대한 과학적 변증(롬 1:20)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 본회 사역을 통하여 확인되었던 것이다.

 

7. 창조과학회 지부의 설립

학회 사역이 확대되면서 지부가 설립되게 되었다. 1981년 대전項충남, 대구項경북 지부를 시발로 1982년 전북, 전남, 부산, 미주 지부가 설립되었으며, 이어 1985년에 경남, 강원 지부와 이스라엘 지회활동(서병선 박사), 1986년 충북 지부, 1988년 울산 지부, 1990년 창원 지부, 1991년 일본지부, 1993건 포항, 원주, 제주 지부, 1994년 공주, 천안지부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각 지부의 설립은 본 회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창조과학 사역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동참하던 해당 지역 회원들의 자발적이고도 전폭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8. 대외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킨 창조과학 사역

본 회의 사역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1985년 미국 창조연구소 부소장 기쉬 박사가 방한하여 서울대, 여의도 순복음 교회, CCC, KAIST, 사랑의 교회, 과학기술대, 경북대, 영남대 등에서 연속적으로 창조론 집회를 가짐으로써 국내 과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1988건 4월 3일 국내 최초로 '창조냐 진화냐'의 TV심포지엄이 공영 방송인 KBS 제3TV에서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창조론 측에서는 본회의 김정한, 김정욱 박사와 본회 회원은 아니지만 교류가 있던 이대 생물학과의 이양림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하여 진화론측 참가자 세 교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같은 해 11월 7,8일 양일 간에는 대학 사상 처음으로 단국대에서 미생물학과 주최로 창조와 진화 두 주제가 동시에 다루어진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의 창조론측 강사는 김종배 교수, 진화론측 강사는 전북대 생물학과 이병훈 교수가 참석하여 양일간 차례로 각각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 때 영화 상영도 있었는데, 대학에서 처음 열린데다가 창조론에 대하여는 무지하였던 생명과학 분야 교수들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다. 1991년에는 국내 최대의 과학 대중지「과학동아」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양측을 동일하게 다룬 기원 논쟁을 7월호 특집으로 게재하게 된다. 이 논쟁이 실리면서 독자들의 예상밖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한 과학동아는 8월호와 10월호에 거듭해서 양측의 논쟁을 싣기도 하였다. 과학동아는 1995년 1월호에 다시 한번 창조론과 진화론 양측의 주장을 게재하였다. 이 모든 것은 창조과학회 활동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이제는 과학계가 기원의 논쟁에 있어서 최소한 창조론자들의 견해를 과학적 견지에서도 무조건 무시하던 입장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누구 한사람의 힘이 아니라 본회 회원들과 한국 기독교계가 뜨거운 관심과 애정으로 기도하고 성원한 결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은혜였다.

 

9. 창조과학 교육관과 새로운 비전 그리고 열매들

이제 국내의 관심은 창조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가르칠 수 있는 건물의 필요성으로 인식전환 되었고, 1989년 창조과학 교육관 건립 계획이 공표되기에 이르렀다. 이 구상은 본회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학회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미주 지부장 최인식 박사의 제안이 계기가 된 것이었다.

부지의 무상임대를 천명한 재단법인 벧엘 선교원의 제안으로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추계리에 건립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재정문제와 벧엘 수양관 내부의 문제로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지난 1993년 8월 6일, 대전 엑스포에 때맞추어 창조과학 전시관을 개관함으로써 1차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창조과학 교육관 건립 교회 후원회(회장 대전 찬양교회 이홍남 목사)가 조직되어 이 구상은 본회 차원을 넘어 범 기독교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 창조과학 전시관 개관에는 본회 요청으로 해사 기술연구소에서 실험한 '노아 방주의 안정성에 대한 연구' (팀장 홍석원 박사)의 결과가 국내 매스컴의 관심을 끌었다. KBS와 MBC TV는 9시 정규 뉴스 시간에 이 실험 결과를 상세히 보도하였고, 국민일보를 비롯, 조선, 동아, 한국, 중앙 등 일간지들이 실험 결과를 상세히 보도하였다.

1990년은 본회 사역에 몇 가지 전기가 있었던 해였다. 교육부의 9O학년도 부터 연차적으로 사용할 고등학교 2종 교과서용 도서검정 공고에 따라, 본회 주선으로 (주)계몽사와 두 분의 저자가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나 창조론적 관점을 배제하고 진화론을 긍정하는 방향으로만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지시에 대하여 불복한 저자들의 도서 집필 포기에 따른 교육부의 해당 교과서 불합격 처분에 대해, 2월 5일 서울고등법원인 「검정불합격 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심리하였다. 원래 교과서 집필은 김해리 교수의 제안으로 몇몇 기독 출판사를 몰색하던 중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계몽사와 연결되어 추진되었었다. 당시 계몽사는 사옥 신축으로 분주하였으나 실무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춘식 부회장이 채택의 여부는 크게 개의치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교과서 집필에 동의하여 이 일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 교과서에 대한 소송은 끝내 기각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일반 대중들에게 창조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교계는 오랜만에 일치된 목소리로 교과서 문제에 대하여 교육부의 처사에 반론을 펴는가 하면, 우려를 표명하여 본회의 노력에 동조하였다. 그리고 한편 이 소송은 진화론을 고수하고자 하는 교육부의 입장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는 귀한 결실이 있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된 교과서에 담으려고 하였던 진화론의 문제점을 담은「진화론의 실상」이라는 책이 계몽사에서 출판되었으며, 여러모로 본회를 도왔던 김춘식 계몽사 부회장은 본회 이사로 계속 봉사하시며 본회 사무실 마련을 도움으로써, 본회 사역을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게 여러 회원들의 기도와 헌신에 따라 본회는 1990년 11월 12일 교육부에 사단법인 인가를 받게 되었다. 이에는 10여년간의 임원들의 기도와 후원, 특별히 권도원 장로와 원동연 박사의 분에 넘치는 재정 지원, 김영길 회장과 실무 간사들의 노고가 있었다. 하나님은 놀라운 섭리로 사무실 문제와 법적 지위를 한꺼번에 확보시켜 주심으로 학회창립 10주년 직전에 제반 준비를 마치게 하시고, 1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을 시행하도록 계획하셨던 것이다. 드디어 1991년 1월 19일에는 본회 사무실이 있던 서초구 영빌딩 지하 미문 교회당에서 사단법인 한국창조과학회 정기총회를 뜨거운 감사와 감격 가운데 개최하였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기사의 궁극적 권위가 과학적 증명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과 기록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이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복음이 전해지는데 얼마나 귀중한 역할을 하는지를 배웠다.

특히 오늘날 과학시대를 살면서 실증주의 정신에 기초한 지성인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성경 첫장에 나타나는 '창조'에 대해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일은 설득력있는 복음 전파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의 전부는 아니지만, 현대 과학 기술시대에 특수한 사역으로 허락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본회의 활동이 단순히 창조와 진회에 관련된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에 부여한 약속된 질서인 과학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분야의 문제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응답하여야 한다는 책임이 수반된다고 본다.

이 일에는 창조질서와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막는 보전의 문제, 낙태, 살인, 유괴 등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 유전공학과 건강 등 과학의 전반 문제에 대하여 본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일들이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전반적인 기독교 문화에 따른 크리스찬 과학도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리라.


10. 세계 선교와 과학적 창조론

마지막 본회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세계 선교에 있어 창조과학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세계 2O억 인구를 포용하던 사회주의권 선교에 있어 과학적 창조론의 중요성이다. 막시즘은 인간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진화론적 낙관론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사회 진화의 최고 형태는 공산주의이고, 여기로 가는데 방해가 되는 진화의 장애물은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법칙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자체 이념이 매우 종교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공산권 선교가 매우 어려웠던 점은 바로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종교에 대한 탄압 그리고 그와 함께 시행된 세뇌교육으로 일반 대중들이 종교적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산권 선교에는 진화론의 모순을 바로 지적하고 과학적으로 창조론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이다. 얼마전 북경의 한 캠퍼스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가 중국 대학생 선교의 어려움에 관해 언급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 무신론적, 진화론적 유물사관에 세뇌된 그들에게 과학적으로 신앙을 변증할 수 있는 중국어 서적이 거의 없어 매우 안타깝다는 말이 있었다. 만일 이들에게 진화론적 유물사관의 모순을 지적하고 창조론을 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한 후, 창조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 1:3)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 쉽게 깨질뿐 아니라,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공산권이 급격히 와해하는 시점에서 그들 마음 가운데 있는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복음밖에 없으며 복음 증거에 과학적 창조론은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권 못지않게 방대한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회교권에도 기독교 선교는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창조론을 통한 접근은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본회 회원들의 견해이다. 이미 인도네시네시아에서 본회의 임번삼, 김종성 박사 등이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한다.

범신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일본의 선교에 있어서도 과학적 창조론의 필요성은 이미 여러모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도 유용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한 한국창조과학회

본회는 출범 당시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라'(빌 1:6) 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과학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과학이 결코 절대적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의 표준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동역자들은 거듭 체험해 오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본회 사역이 하나님을 의지하는한 계속될 것임을 확신한다. 본회 사역에 대한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와 동참을 기대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창조론/창조론과 신앙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K02

 

출처 : 창조지
 
수달인가, 네 발로 걸었던 고래인가? : 네 발 가진 고래로 주장되...
노스다코타의 화석묘지에 대한 잘못된 해석 : 화석무덤의 원인이 소...
돌연변이 : 진화의 원료? (Mut...
하나의 특별한 우주 : 그 개념...
자연선택이 진화의 증거가 될 수...
남북전쟁 시에 사냥된 익룡 사진...
페루 삭사이와만 요새의 미스터리...
이카 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심...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 ...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
생물의 진화론적 기원이 불가능한...
아담과 이브의 혈액형은? (It's...
<리뷰> 진화론을 비판하는 3,000...
창세기 사건들과 관련된 족장들의...

과학실험 큐티3
김형기 저

과학실험 큐티2
김형기 저

종교가 되어버린 진화라는 상상
정재훈 저

과학실험 큐티3
김형기 저

빅뱅과 5차원 우주창조론
권진혁 저

영화 속 진화론 바로잡기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저